벨파스트 SS '비일상'과 달콤한 초콜릿 이야깃거리

비일상과 달콤한 초콜릿

 어느 날.
 “주인님. 조만간 저희 로열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있을 예정입니다.”
 돌연 비서함 벨파스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기도 하고, 무언가 도와줄 일은 없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시다면 다음 휴일에 마을에 내려가 물건을 조금 사려고 합니다만, 동행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정도라면 별거 아니지, 라는 마음에 나는 흔쾌히 OK라고 답했다.

 며칠 뒤, 채비를 마치고 나와 약속장소로 정한 문까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벨파스트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며 높은 외벽을 따라 걷다 보니 금세 눈앞에 문이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여느 때와 같이 차분한 벨파스트의 목소리가 바로 앞쪽에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눈을 바라본 그 순간, 나는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주인님과의 데이트에 어울리는 옷으로 코디 해보았습니다. 주인님의 반응을 보아하니 만족하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벨파스트가 입은 옷은 평소의 메이드복이 아니었다. 내가 도통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니, 벨파스트가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번 파티의 테마는 ‘비일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오늘 이렇게 주인님과의 데이트에서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데이트……. 새삼 눈이 확 뜨였다. 따지고 보니 이건 데이트라는 단어 외에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었다.
 “그럼, 가시죠.”
 이제야 겨우 깨달은 내 둔감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벨파스트는 슥 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끄는 대로 그 손을 잡으니 벨파스트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긴장하셨다는 사실이 손을 통해서 전해지는군요.”
 역시 벨파스트. 한번 걸리면 아무리 숨겨 봐도 전부 들통이 난다.
 “후훗. 부디 사양 마시고 더 꼭 잡으셔도 괜찮답니다?”
 벨파스트가 옆에 와 섰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옷을 흘깃 보니,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히 갈색 니트 바깥으로 삐져나온 살결이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주인님?”
 아무래도 벨파스트가 내 시선을 눈치챈 것 같다. 당황한 나는 눈을 돌리고 맞잡은 손을 흔들며 함께 문을 나섰다. 이건 마치 연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가능한 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더 긴장할 것 같았다.

 드디어 마을 중심부에 도착했다.
 “언니께로부터, 저희 메이드대가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하는지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에든버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주인님께서 주방까지 찾아오시는 일은 별로 없으시지요. 하지만 메이드의 업무라는 것은 아마 주인님께서 상상하시는 것과 큰 차이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벨파스트는 손을 턱에 가져다 대고 고개를 갸웃했다. 별 중요한 얘기도 아니다. 완벽한 메이드장인 그녀가 주방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즉 메이드대가 아니라 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는 것이군요.”
 맞는 말이다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니 좀 부끄럽다. 횡설수설하고 있으니, 벨파스트는 우스꽝스럽다는 듯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후후……. 송구합니다. 주인님의 곤란하신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 그만.”
 이것 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언제라도 주인님께 모든 것을 밝힐 각오가 되어 있답니다.”
 마치 시험하는 듯한 말투의 벨파스트와 한순간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때만큼은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그건 무슨 뜻이냐고 입을 열려던 순간,
 “주인님. 저기 쇼윈도에 진열된 옷을 보십시오.”

 벨파스트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 뒤였다.
 “주인님께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만 한번 입어 보시면 어떠신지요? 이번 파티의 테마는 ‘비일상’이므로 주인님께서도 평소와는 다른 의상으로 참가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쩐지 물을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러마 하고 말했다. 결국 그 후로는 벨파스트의 감독 하에 여러 옷들을 입어 보게 되었다.

 혼자 모든 짐을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둘이서 반씩 나누어 모항까지 들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부두 근처까지 왔더니 무슨 일인지 벨파스트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오늘은 매우 유의미한 시간이었습니다. 주인님과 이렇게 파티용 옷을 고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폐하께서도 분명 기뻐하시겠지요.”
 그녀는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 시간, 이 풍경을 정말 좋아합니다. 바닷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태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마치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매일 같이 업무에 쫓기다 보니 이러한 경치에 관심을 두는 일은 거의 없었다. 벨파스트의 말대로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언젠가, 직접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만.”
 불쑥 말을 꺼낸 벨파스트는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주인님. 항상 저희를 곁에서 지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꾹 하고 죄어 왔다. 그때, 바다 쪽에서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벨파스트는 갈색 니트 바깥으로 나와 있는 피부를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앗…….”
 정신을 차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두 팔로 당겨 끌어안고 있었다.
 “……주인님의 그런 점 때문에, 아무리 마음을 다하여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버려요.”
 벨파스트의 얼굴이 발갛게 물든 것은 석양 때문일까. 아니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윽고 벨파스트가 옷소매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눈을…… 감아 주시겠습니까?
 심장의 고동이 점점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깜깜한 시야 가운데 벨파스트의 숨결이 귓가에 느껴졌다. 밀착된 그녀의 보드라운 가슴 감촉에 정신이 팔려 있자니, 슬쩍 입술에 무언가가 와닿았다.
 “……읍!!”
 놀라는 도중에도 그 무언가는 조금씩 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나는 그만 눈을 떠 버렸다. 벨파스트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 옷을 입어 보는 중에 샀던 과자입니다. 저도 먼저 먹어 보았습니다만, 매우 맛있었던 고로 주인님께도 부디 권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입 안에 들어온 것은 가늘고 긴 막대 모양의 초콜릿 과자인 것 같다. 어쩐지 기운이 쑥 빠진다.
 “입에 맞으시는지요?”
 달고 맛있다……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벨파스트와의 첫 데이트는 달콤한 여운을 남긴 채로 끝났다.

(끝)

덧글

  • ㅇㅇ 2019/12/09 03:20 # 삭제 답글

    조은번역 고맙습니다 ㅎ 아으달달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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